
그 밖에도 1988년에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였던 부시를 반대하는 캠페인과 감자 첫째를 잘못 썼던 댄 퀘일 부통령을 희화화한 '감자 머리' 광고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또한 패션 디자이너 아이작 미즈라히의 카탈로그에서는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다큐멘터리 스타일로 다룸으로써 패션 디자인의 '결과 비즈니스'가 아닌 '과정 비즈니스'임을 드러내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의 가난한 클라이언트 중에는 브로드웨이에 위치한 소규모 사립 박물관 '뉴 뮤지엄'도 있었습니다. 칼맨은 이 박물관에서 개최된 <낯선 흡인력: 혼란의 징조>라는 전시회를 위해서 흑백으로 카피한 재난 사진을 벽과 천장에 붙였습니다. 큰 비용을 들이지 않은 이 전시는 '혼돈'에 대해서 신선한 시각을 제시한 한편, 예술이 실제 상황과 경쟁하지 않고 언제나 흰 입방체 (갤러리) 속에 갇혀 왔음을 꼬집었습니다. 마를린 매카시와 함께 했던 편집 프로젝트에서는 타이포그래픽과 레이아웃을 자유롭고 다양하게 변화시킴(이탤릭화, 대소문자 교체, 굵기 조절) 등으로써 전혀 다른 느낌의 문서를 만들었습니다. 우연히 나온 듯한 이 결과는 칼맨이 원하던 '버네큘러' 디자인의 한 전형이 되었습니다.
한편 그는 스위스의 가구 회사인 '비트라'의 회장 롤프 펠바움 씨의 직업과 삶, 그리고 의자에 관한 600 쪽 분량의 책자 <체어맨>을 발간하게 됐습니다. 이 책은 <컬러스>와 마찬가지로 문자 소통 체계를 가능한 한 자제하고 과거 비주얼 위주로 편집되었습니다. 그리고 역시 <컬러스>에서처럼 독특하고 때로는 충격적이기도 한 비주얼 자료들을 활용해 '버네큘러' 디자인의 또 다른 예로 남았습니다.
칼맨은 <컬러스>와 <체어맨>을 통해서 매끈하지만 거짓을 일삼는 선진국의 디자인보다도 보통 사람들의 삶이 묻어나는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의 '버네큘러' 디자인이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비싼 유럽 가구의 제3세계의 암울한 현실을 담은 사진을 매치시킨 <체어맨>에는 호화스러운 오피스 가구의 이면에 고달픈 현실의 삶이 있음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출판 디자인에서 눈여겨볼 만한 또 한 가지 작업으로는 독일 어느 일간지 일요일자 부록인 <수드도이제 차이퉁>을 들 수 있습니다. 제니 홀처와 함께 작업한 이 인쇄물에서 제니는 여성들의 강간에 대한 기사를 작성한 뒤 이를 위한 표지와 내지 디자인을 칼맨에게 의뢰했습니다. 칼맨은 텍스트를 여러 여성의 몸에 문신처럼 새겨 촬영해서 책에 실었습니다. 그리고 표지에는 검정 바탕의 흰 글 상자를 만든 다음 핏빛 글씨로 간단한 메시지를 넣었습니다. 이 강렬한 디자인은 이후 핏빛 글씨가 인간의 혈액과 잉크를 혼합해서 만든 것이라는 게 밝혀지면서 디자인계의 일대 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기존의 틀을 깨고 극단적인 비주얼을 보여주는 것만이 티보 칼맨의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내 마이라와 함께 어른과 아이 모두가 좋아할 만한 책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토킹 헤즈'의 데이비드 번의 노래에 착안해 마이라가 이야기를 쓰고 그것을 연필로 스케치하면 칼맨이 그 스케치를 구체화하였습니다. 그리고 'M&Co.'의 멤버인 에밀리 오버만이 마무리해 주었습니다. 물론 이런 과정은 네 사람 간의 돈독한 믿음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작업이었으며, 이들은 마지막 인쇄 작업 전까지 컴퓨터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책들은 이제껏 한 번도 접할 수 없었던 독특한 형태를 지녔습니다. 유머로도 가득 차 있었으며, 그들이 바라본 세상 즉 일종의 신성한 관계로 가득한 세상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기업 그래픽-
'M&Co.'는 다양한 기업을 클라이언트로 삼아 기업 아이덴티티 CI와 제작물 등을 디자인해왔습니다. 부동산 회사인 레드 스퀘어, 의류회사 더 리미티드, 가구회사 놀 등은 티보 칼맨이 소중히 생각했던 클라이언트였습니다.
그는 문자가 아닌 비주얼을 통해 기업 이미지를 전달하려고 했습니다. 기업 디자인의 좋은 예로 가구 회사 놀의 시스템 가구 '오케스트라'의 로고와 부동산 회사 '레드스퀘어'의 브로슈어를 꼽습니다. 'M&Co.'는 '오케스트라'의 로고 문구를 높은 음자리표 형태로 만들어 이 시스템 가구의 '하모니'를 시각적으로 승화시켰습니다. '레드 스퀘어'의 브로슈어는 고전적이면서도 우아한 비주얼과,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아내는 잡지 구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변두리 도시의 부동산 개발 계획 브로슈어에서 기대할 수 없었던 독특한 개성을 보여줌으로써 큰 홍보 효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영화와 뮤직비디오-
광고, 홍보 디자인 그리고 영화 타이틀은 그가 잠깐 다른 곳에 한눈을 판 매체입니다. 칼맨은 영상 그래픽을 할리우드의 영화만큼이나 중요한 영역으로 간주했습니다. 칼맨은 유명한 영화 제작자인 조나단 뎀과 함께 <섬딩 와일드>라는 극 영화의 타이틀 작업을 하면서 타이포 그래피들의 움직임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아카데미 수상작으로 유명한 <양들의 침묵>의 타이틀 작업에도 함께 참여했습니다. 한편 칼맨은 '토킹 헤즈'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그들의 뮤직비디오를 감독을 하기도 했습니다. '토킹 헤즈'의 데이비드 번 얼굴에 16밀리미터 영상으로 가사를 쏘아 노래와 가사를 동기화시켰습니다. 그리고 이 비디오는, 디자인을 통해 뮤지션과 가사 사이의 위트 있는 관계를 맺어줌으로써 '토킹 헤즈'의 진보적인 이미지를 더 견고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다음 편 계속)
(출처- 이원제, 티보 칼맨 디자인으로 세상을 발가벗기다, 디자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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