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교육의 의미를 말하자면, 지식을 전달하고 수용한다는 것보다는 스스로 발견하고 깨달으며, 이해하도록 독려하는 과정 그 자체에 있습니다. 실제로 예술가의 감각과 사회 방식은 삶의 모든 차원에 개입하고 주의력을 실천하는 생물학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의 예술가를 교육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게 됩니다.
교육이란, 그런 예술가적 감각과 사회 방식을 구체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관계를 풍부하고도 반성적으로 엮어주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일종의 매력적인 매개 작용에 의미를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 모홀리나기가 예술의 실천적 측면의 기획을 통한 이론적 작업에 두었다는 사실도 강조할 만 합니다. 그는 바우하우스 재직 시절에 바우하우스 총서와 다양한 출판물을 기획, 실행하는 데 있어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예술가의 활동 영역을 좁은 의미의 창작에만 국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문화 기획이라는 큰 차원의 위치시켰다는 점은 확실히 현대적입니다. 게다가 문화 기획이라는 게 이론과 경험이 서로 녹아들면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볼 때 그의 이러한 활동은 중요한 가치를 지닙니다.
문화 기획이란 한 시대의 문화적 변동과 그 수위의 의미를 읽고 조직하는 실천 행위입니다. 따라서 모홀리나기의 문화 기획 활동은 디지털 문화를 사는 이 시대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에게 반성적 성찰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지식인으로서의 디자이너와 그 문화적 개입의 의미가 중요한 실천적 덕목이라는 점에서 그의 예술 활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새로운 의미로 다가옵니다.
-빛에서 미디어로-- 서명 없는 작품-
1921년 모홀리나기는 헝가리의 진보적인 문학 예술지인 <마MA> 3월호에 그의 작품 유리 건축을 게재했습니다. 단순한 형태의 건축적 공간 개념을 표현한 이 작은 조각은 빛과 공간감에 대한 그의 관심이 표명된 첫 번째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을 두고 거론된 투명성의 미학은 빛과 소리 움직임을 비롯한 비물질에 대한 그의 관심을 일컫는 것으로서 모홀리나기의 대표적인 미학적 개념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 작품은 전통적인 미술에서 말하는 오리지널한 작가의 수공 작업에 따른 물건 혹은 마스터피스로서의 작품 개념을 벗어나서 기계적인 제작 과정과 복제 개념을 통해 완결된 작품보다는 개념과 과정을 중시하는 작업의 의미를 제시하는 계기가 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같은 시작은 곧 모홀리나기의 매체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이를 통한 작품 개념의 전환으로 연결됩니다.
1922년에 제작한 전화로 그림 그림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전화로 에나멜이라는 재료를 주문하고 진행합니다. 작업 사항을 지시해 만들어진 것으로 에나멜이라는 산업 재료에 대한 물질적 이해를 바탕으로 색채와 형태의 긴장감에 대한 새로운 관계를 고찰한 작품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중요성은 전화 주문을 통한 작업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즉, 화가의 손으로 그려지는 작업의 절대적 특성을 배제한 상태에서 기계를 통한 작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했다는 점입니다.
결국 <유리 건축>에 이어 <전화로 그림 그림> 역시 원본임을 입증하는 작가의 서명을 배제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1922년은 비물질 언어와 미디어를 발견했다는 점에서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 해의 첫 번째 아내였던 루시아와 함께 순수 빛의 조형물이라 할 포토그램을 실험했습니다. 또한 오늘날의 미디어 아트의 원론이라 할 수 있는 <생산-복제>라는 에세이를 <데 슈틸>지에 기고했으며 <데어 슈투룸>지에는 알프레드 케미니와 함께 <힘의 역동적-구성적 체계>라는 키네틱 아트를 위한 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생산-복제>는 기술 매체의 발달로 인해 예술성 논의가 복제 개념의 의해서 좌우되는 현실에, 과연 새로운 예술 개념을 어떻게 획득할 수 있는가를 논하는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는 생산적인 예술 논의는 원화인가 복제인가를 따지는 일에 있지 않습니다. 복제술을 새로운 예술적 관계로 이끌어 이끌면서 생산적 목적으로 그 기능을 창출할 때 가능하다는 논지를 폅니다. 이 논문은 1936년에 발표된 발터 벤야민의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의 논리적 토대를 제공하기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벤야민은 <사진의 작은 역사>에서 모홀리나기에 사진에 관한 이론적 쟁점을 소개하고 있어 모홀리나기의 영향을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새로운 예술적 실천은 무엇인지를 제시하는 일종의 시각 문화론 인문서입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기술 매체의 발달에 따라 변모하는 시각 문화 현실에서 회화가 사진, 영화 등의 장르와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연속성을 지닌다는 것이 이 책의 대전제입니다.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이 책은 사진과 영화가 어떠한 예술적 필요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살핍니다. 그리고 공공적으로 시간 문화의 질을 결정하는 새로운 역할을 예술가에게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모홀리나기는 문맹을 이전에는 글자를 읽을 수 없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었다지만, 앞으로는 이미지를 읽을 수 없는 사람을 가리키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이미지와 문자의 소통적 기능에 주목하고 그것의 분리가 아니라 통합적 관계 속에서 더 풍부한 소통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던 듯합니다.
이에 따라 <회화, 사진, 영화>에는 이미지와 텍스트의 결합을 실험한 '타이포포토'와 이를 활용한 시나리오인 <대도시의 다이내미즘>이 실려 있습니다, 만일 그가 아직도 살아있다면 아마 디지털 언어에서의 통합적 소통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자세의 개정판은 <회화, 사진, 영화, 디지털>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다음 편 계속)
(출처- 박신의,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라즐로 모홀리나기, 디자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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